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문단 편집) === 말년 === 역사철학, 예술철학 등의 강의는 성공적이었고, 헤겔의 명성은 점점 높아져 갔다. 헤겔이 강의실에 들어서면 웅성거리던 소리는 갑자기 멈추었고, 심지어 너무나 조용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헤겔 고유의 이해하기 힘든 용어와 농담들은 도시 전역에 빠르게 퍼져서, 실제로 거의 모든 곳에서 그의 사변적인 표현들이 쓰여졌다. 대학의 건물 벽이나 담장에는 분필이나 연필로 헤겔의 말들이 적혀 있곤 했다. "당신, 헤겔이 한 말 들어 보았소?"는 베를린 사회의 일상적인 말이 되었다. 헤겔을 만나려고 하는 사람들이 쇄도했고, 자신의 작품을 읽고 대학에서 좋은 말을 해 달라거나 한번 만나 달라고 하는 등의 편지를 헤겔은 정기적으로 받았다. 이 무렵 헤겔은 책을 펴내지 않고 오직 강의를 통해서만 자신의 체계를 세워 나가고 있었는데, 그래서 헤겔의 강의를 받아 적은 노트의 사본은 사람들이 늘 찾는 품목이었다. 1826년에는 제자들이 마련한 헤겔의 깜짝 생일파티가 지역 신문에 실렸다.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는 헤겔의 생일을 보도한 신문 기사를 읽고 화를 냈다. 자신의 생일파티에 대한 보도와 비교할 때 헤겔의 생일파티가 너무 많은 지면을 차지했다는 이유였다. 그리하여 왕은 내각령을 공표해서 이 시점 이후 "개인의" 생일에 대한 신문 보도를 금지했다. 1830년에는 드디어 베를린 대학의 최고 행정직인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더군다나 대학을 감독하는 정부의 전권대사로도 임명되었다. 그러나 1829년 들어 나빠진 건강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상부 위장관 질병으로 인해 가슴 통증은 심해졌고 빈혈로 인해 얼굴은 창백해졌다. 그럼에도 강의는 꾸준히 진행했다. 그러던 어느날 심각한 통증이 몰려와 하루종일 가슴 경련과 복통을 호소하다가, 그 다음날인 1831년 11월 14일 오후 다섯 시경에 세상을 떠났다.[* [[하인리히 하이네]]에 따르면, 임종 직전 유언으로 헤겔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를 이해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다." 그러나 잠시 후에 분하다는 듯이 다시 말을 덧붙이면서, "(사실은) 나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일화는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https://quoteinvestigator.com/2017/04/25/understand/|#]] --헤겔 공부하다가 빡친 학생들이 만들어냈다는 게 정설--] 당시 베를린은 [[콜레라]]가 유행하고 있었고, 의사들은 헤겔이 콜레라로 사망했다고 진단했다. 그렇지만 죽음의 원인은 사실상 콜레라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 헤겔은 설사나 발열, 혹은 그 밖에 어떤 콜레라 증상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것은 의사들이 죽음의 원인을 콜레라로 발표한 것이었다. 그러나 헤겔이 콜레라 증상을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들은 죽음의 원인을 몸의 내부에서 발생하여, 일반적인 콜레라의 외적인 증상을 전혀 보이지 않는 "독성 콜레라"로 판정했다. 그렇지만 '''죽음의 원인은 사실상 콜레라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 헤겔은 설사나 발열, 혹은 그 밖에 어떤 콜레라 증상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상 헤겔은 언젠가부터, 아마도 1827년 이래로 앓아 왔던 만성적인 병 때문에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콜레라가 베를린의 여러 저명한 지식인들을 앗아갔고 의사들의 진단이 있었기 때문에 헤겔은 콜레라에 의해 희생된 유명 인사의 한 사람으로 지금까지 생각되어 왔다." (테리 핀카드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 이제이북스, 2006, p.847~848)] 이틀 뒤 치뤄진(11월 16일) 장례식은 거대한 행렬을 이루었다. 헤겔의 시신을 실은 마차 뒤를 학생들과 도시 전역에서 모인 수많은 애도자들이 뒤따랐다. 심지어 헤겔의 반대자들도 그의 갑작스럽고 예기치 않은 죽음에 충격을 받았다. 헤겔 자신의 소망에 따라 도로테아 공동묘지에 있는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피히테]] 옆에 묻혔다. 헤겔이 죽은지 12년 후에, 미쳐버렸던 그의 절친한 친구 [[프리드리히 횔덜린|횔덜린]]도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헤겔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방문객의 질문을 받고는, 중얼거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해댔다. 분명한 것은 이 말이었다. "절대자요 The Absolute."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